설 연휴, 이곳으로 떠나보는 것이 어때요?
-관광공사, 설 연휴 가볼만한 곳으로 제주, 단양, 담양, 삼척, 통영 등 5곳 선정
우리민족 최대명절인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명절은 설 연휴와 주말을 합쳐 5일 이상의 휴일이 생긴다. 긴 연휴를 활용하여 차례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고향에서 가까운 여행지를 찾아 휴식을 즐겨보면 어떨까. 한국관광공사(사장 오지철)는 이럴 때 찾아가면 좋은 우리 땅 볼거리를 추천한다.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아내와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휴식. 내가 나와 가족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자연과 내가 하나되는 제주도 트레킹 명소, 제주
360여 개의 오름이 있고, 때묻지 않은 해안절경이 곳곳에 산재한 제주도는 트레킹 여행의 최적지이다. 광활한 초원을 가로질러 어느 오름의 정상에 올라섰을 때, 또는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한 바닷가에서 부드러운 해풍이 나의 온 몸을 쓰다듬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쾌하다. 연신 불어대는 바람 속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하늘을 쳐다보노라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성취감과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듯한 청량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처럼 대자연의 너른 품에서 바람과 구름, 돌과 나무와 하늘을 길동무 삼아 걸으며 심신의 여유와 자유로움을 얻는 것이 바로 트레킹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제주도의 오름들은 트레킹을 즐기기에 아주 제격이다. 대부분 비고(比高; 실제 등산하는 높이)도 낮고 등산로도 뚜렷해서 육지의 산보다는 비교적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제주도 중산간지대의 숱한 오름들 가운데 딱 한곳만 추천한다면, ‘땅의 할아버지 오름’이라는 뜻의 ‘지조악’(地祖岳)이라는 한자이름을 가진 따라비오름을 권하고 싶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위치한 따라비오름은 커다란 원형 분화구 안에 3개의 작은 화구를 가진 특이한 형태의 오름이다. 그리고 3개의 화구는 온통 풀밭에 뒤덮인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둘레가 2633m에 이를 만큼 거대한 오름이지만, 비고가 107m에 불과해서 별로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해발 342m의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에 봉긋봉긋한 오름들과 한라산 정상이 거침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내 자신이 마치 세상의 중심에 선 듯한 감동이 용솟음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해진다.
서귀포시 중문해수욕장 서쪽의 조근모살해변에서 여래동의 질시슴해안 사이에도 걷기 좋고 풍광 빼어난 해안트레킹코스가 개발돼 있다. 이 코스에는 갯돌해변과 주상절리 암벽, 해식동굴과 넓은 갯바위, 그리고 기암괴석과 용천수 등 제주도 특유의 화산지형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아이들의 자연사 현장학습장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먼저 이 코스의 시점인 조근모살해변으로 내려가려면 중문관광단지에 위치한 하얏리젠시호텔을 찾아야 한다. 이 호텔의 바닷가 쪽으로 난 계단산책로를 내려서면 곧바로 조근모살에 다다른다. 거친 현무암 바윗돌이 나뒹구는 해변의 한쪽에는 작은 백사장이 있다. 해수욕장으로는 적합하지 않지만, 인적이 드물고 주변 풍광이 빼어나서 한가롭게 바다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이 해변을 지나면 금세 갯깍 주상절리대가 나타난다. 깎은 듯이 정교하고 섬세한 돌기둥들이 해안절벽을 이루는 비경이다. 최대 높이 40m, 폭 1km쯤에 달하는 이곳의 주상절리대에는 두 개의 커다란 해식동굴도 형성돼 있다. 그중 ‘다람쥐굴’이라 불리는 동쪽 동굴은 무문토기 조각이 출토된 선사유적지이기도 하다. 다람쥐굴의 서쪽에는 높이 20 여m, 길이 25m 가량의 해식동굴이 양쪽으로 트여 있다. 동굴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퍽 이채롭다.
갯깍 주상절리대를 벗어나면 콘크리트로 포장된 예래동해안도로가 나온다. 환해장성의 잔해인 돌담을 따라가는 조붓한 길이다. 길 양쪽이 훤히 트여 있어서 시야가 활달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4시 방향쯤으로 시선을 돌리면 구름 위로 뾰족이 솟은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제주도 유일의 천연담수 노천수영장인 ‘논짓물’을 지나면, 늘 파도와 바위가 서로 으르렁거리고 포효하는 질시슴해안에 당도한다.
제주도의 트레킹 명소로 송악산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제주도의 맨 남쪽 바닷가에 솟아오른 송악산(104m) 정상에는 둘레 500m, 깊이 80 여m의 거대한 이중분화구가 형성돼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빨아들일 듯한 분화구의 위용이 가벼운 공포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송악산 정상은 탁월한 천연전망대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시야에 거칠 것이 없다. 동쪽으로는 산방산과 한라산, 서쪽으로는 모슬포항과 알뜨르비행장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에는 ‘국토의 막내’ 마라도와 가파도가 시야에 잡히고, 북쪽에는 광활한 대정들녘과 모슬봉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송악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푸르디푸른 쪽빛이다. 쪽빛바다에 희끗희끗한 포말이 명멸을 거듭한다. 멀리 태평양에서부터 밀려오는 파도가 연신 거품을 물고 들이친다. 끝없이 뻗은 해안선에 부딪치는 파도소리에 지축마저 흔들릴 지경이다. 그래서 현지 주민들은 송악산을 ‘절울이오름’이라 부른다.
송악산 북쪽의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들녘은 일제시대에 오무라해군항공대의 ‘알뜨르비행장’이 들어섰던 곳이다. 지금도 들녘 곳곳에는 당시 건립된 비행기격납고의 잔해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그리고 송악산 기슭의 해안절벽 아래에도 일본군이 군수품과 어뢰정을 숨겨두기 위해 파놓은 인공동굴이 많다. 모두 15개여서 ‘일오동굴’로도 불리는데,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가 된 뒤로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사통팔달 휴양지, 충북 단양
충북 단양군은 중앙고속도로가 있어 찾아가기 편리하고, 볼거리?즐길거리가 많아 지루할 틈 없는 사통팔달의 도시이다. 게다가 충북 북부지방과 , 경북 북부지방, 강원지방으로 연결되는 국도들이 지나고 있어 강원 서부와 충북 북부지방에선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이곳을 찾아 아름다운 산수를 노래한 시인묵객들이 많다. 그들의 칭송을 받은 대표적인 곳은 물길 따라 자리한 단양팔경이다. 그중 다섯 개의 절경이 단성면에 자리하고 있다. 장회리의 구담봉과 옥순봉, 선암계곡의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이 그것이다.
단성면의 절경들은 물길 옆으로 달리는 도로를 따라가며 볼 수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59번국도이다. 단양 제일의 드라이브코스이기도한 선암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또하나의 단양팔경이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대강면과 단성면 경계에 자리한 사인암이다. 조선대표화가로 손꼽히는 김홍도가 열흘이나 바라보아도 그림으로 옮길 수 없어 1년 후에야 그림으로 그렸다는 사인암. 웅장하게 선 장수처럼 절벽은 말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인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첩첩이 쌓인 산들을 방패삼아 도시의 번다함에서 빗겨나 그릇을 굽고 있는 방곡도예촌이 있다. 1994년경 단양군이 도예촌을 세우면서 10여개의 가마가 다시 모여 그릇을 굽고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백자와 분청사기를 많이 굽던 곳이었다. 구점, 아랫점, 웃점, 사기점 등 마을이름에서도 오랜 도예촌 흔적이 남아있다. 도예촌이 다시 생겨나면서는 예부터 구워온 백자와 분청사기도 굽지만 현대인들의 생활에 맞는 새로운 그릇을 개발하기도 했다. 방곡도예촌 대표그릇인 ‘녹자’이다. 녹자를 개발한 것은 3대째 이곳에서 그릇을 굽고 있는 충청북도무형문화재 사기장이자 대한민국명장으로 지정된 서동규 씨이다. 백토가 녹아 그릇으로 구워지는 온도인 1200~1300도보다 높은 1500~2000도에서야 녹는 사토와 느릅나무재 유약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 덕분에 단단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사람의 몸에도 유익한 성분을 가진 느릅나무 도자기 녹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방곡도예촌에서는 도예전시장 및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백자유약을 사용해 작업하는 방곡도자공예교육원이다. 이곳의 도예체험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이루어진다. 3시간 정도 체험하는 체험비용은 1인당 1만원이다. 예약필수. 문의 043)421-5020
영춘면 하리에는 단양의 대표적인 사적이 있다. 온달산성과 온달동굴이다. 이곳에 지난해 한창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왕사신기> 촬영지가 있다. 고구려를 소재로 한 드라마 <연개소문>을 위해 지어진 촬영장으로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 황궁, 대신들의 저택, 연못 및 각종 부속건물들과 저잣거리 등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곳에서 태왕 담덕을 위해 국내성을 떠난 수지니가 숨어 생활하는 장면, 태왕과 화천회대장로가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비롯해 최종회의 많은 부분이 촬영되었다.
촬영장 저잣거리 끝에서 온달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계단 길을 따라 올라가면 그 끝에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장군이 신라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 전해지는 온달산성이 있는 것. 산성은 산비탈을 말굽처럼 감싼 형태로 둘레가 683m나 된다. 길이 70cm, 너비 40cm, 두께 5cm 크기의 얄팍한 돌들을 3~4m 두께로 쌓아 올린 성곽은 동서남북 높이가 6~10m로 서로 다른 것이 특징. 남한강변 산 위에 자리하고 있어 성곽에 올라서면 강과 함께 보이는 풍경이 그만이다.
산성에서 내려오면 약 4억5천만 년 전부터 만들어졌다 추정되는 온달동굴이 있다. 석회암 천연동굴로 길이가 760m나 된다. 물이 많은 석회암동굴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동굴의 아름다움을 만나려면 오리걸음을 걷는 것도 각오해야한다. 종유석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습들을 따라 설치된 관찰로가 천장이 낮은 동굴 아래로도 통과하기 때문이다.
온달문화관광지의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이고 쉬는 날은 없다. 관광지입장료는 어른 5000원, 청소년 3500원, 어린이 2500원이다. 문의 043)423-8820
느린 걸음으로 돌아보는 슬로시티, 전남 담양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대숲을 지나 마치 시대를 거슬러 점잖은 양반네 정원 안뜰에 들어선 듯 느껴지는 소쇄원(사적 304호)이 있는 곳 전남담양. 스스로를 ‘소쇄처사’라고 부르며 한평생 은거생활을 하던 선비 양산보처럼 번잡한 명절을 보내고 난 후 휴식이 필요한 몸을 추스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정갈한 가옥과 정자,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에 내려앉은 고요함은 찾는 이조차 조심스럽게 한다.
조선 중기 대표정원인 이곳의 중심은 4,060평방미터 면적의 중심으로 흐르는 작은 내이다. 외나무다리를 따라 내를 건너면 맨 윗단에 주인이 머물던 광풍루가 있고 한 단 아래 작은 계곡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제월당이 있다. 제월당에는 김인후가 보고 느낀 소쇄원의 48가지 모습을 담은 ‘소쇄원 48영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양산보는 ‘어느 것 하나에도 내 손길 닿지 않은 것이 없으니 팔지도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도 말라'고 유언했을 정도로 소새원을 아꼈다고 한다. 온 가족이 천천히 돌아보며 조선시대의 선비의 마음을 느껴보자.
담양군 용면 삼만리에는 담양의 대나무를 새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세계 제일의 대나무 숯 공장 대나무바이오텍에 자리한 대나무바이오연구소 2층의 천연저온비누체험장이다. 피부를 곱게 만들어주고 주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 주며 각질제거 및 아토피 피부보호 효과가 있어 천연저온비누를 만들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다.
비누체험은 올리브유/팜유/야자유/포도씨유 등 100% 천연고급식물유를 섞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름이 골고루 섞여 서로 분리되지 않는 크림상태가 될 때까지 잘 저어주는 것이 포인트이다. 크림상태의 기름에 숯/죽로차/죽초액/와인 등 원하는 첨가물을 넣어 골고루 섞어 틀에 부어주면 비누가 완성된다. 하지만 바로 사용할 수는 없다. 체험장에서 일주일간 숙성해 집으로 보내주면 그때부터 다시 4주정도의 숙성기간을 더 거쳐야하는 것. 이처럼 시간과 정성을 들여 손으로 만드는 이곳의 비누는 까다로운 수출조건을 모두 맞춰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체험에 사용되는 재료는 모두 두 틀 기준의 재료다. 한 틀이 비누 10장 분량인 셈. 체험비용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내면 된다. 비누 1장 기준 4000원. 체험예약 필수. 일요일은 쉰다. 문의 및 예약 061)383-9100, www.daesoot.co.kr
발효와 숙성을 거쳐야 하는 우리 전통음식이 많이 남아있는 창평면은 지난해 말 슬로시티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인구 5만 이하의 도시에 패스트푸드점과 대형마트가 없어야 하며, 다른 슬로시티와 연결할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창평면이 적합했던 것. 그 중심에 우리전통 먹거리들이 있었다. 아직도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장을 담는 고려전통식품의 기순도 씨, 찹쌀을 삭혀 가루를 내고 다시 쪄 공기가 골고루 배어들도록 공이로 쳐서 만드는 한과, 쌀과 엿기름, 생강을 넣고 고아 내는 쌀엿 등이 그것. 모두 시간과 정성을 기본으로 하는 음식들이다.
창평면 유천리에서 죽염된장을 빚고 있는 고려전통식품은 10대를 이어온 장맛으로 슬로시티평가단의 입맛을 사로잡은 창평 고씨 4종가의 종부 기순도 씨가 전통장류를 만드는 곳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부지런히 쑤어온 메주덩이만도 콩 500~600가마 분량. 1년 쓸 메주덩이들이다. 메주덩이들은 어느 정도 건조된 지금, 지푸라기로 엮어 공간 곳곳에 걸려있다. 처마아래 대나무 걸이를 만들어 메주덩이를 걸어놓은 풍경이 고향집처럼 푸근하게 느껴진다. 마당엔 직접 담은 장류들이 맑은 바람과 햇빛을 쐬며 숙성되고 있는 전통옹기들로 가득하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장류는 죽염된장, 청국장, 고추장, 간장 등 다양하다. 아파트에서 숙성시키기 어려운 전통된장을 이곳에 담가두면 대신 숙성보관해주기도 한다.
창평의 또다른 전통 손맛은 한과이다. 겨울철 간식거리를 위해 만들었던 한과는 과일이나 야채를 조린 정과를 비롯해 유과와 강정 등 다양하다. 그 중 대표적인 발효식품은 쌀을 물에 담가 일주일정도 삭힌 후 씻어 건져 말려 사용하는 유과이다. 잘 삭은 쌀이어야만 익혀 꽈리가 부풀도록 치고 밀대로 밀고 말려 30도의 기름에 넣었을 때 고르게 부풀어 오르는 것. 창평에는 한과를 만들어내는 곳이 많다. 그중 정직하고 투박한 손맛으로 만들어 내는 안복자한과(080-3828-080, www.anbokja.co.kr)와 복잡한 한과만들기 과정 중 몇몇을 손맛 그대로 기계화 한 담양한과(061)383-8347, www.damyang.co.kr)가 대표적이다.
창평면소재지가 있는 삼천리는 한옥과 돌담이 잘 보존되어있는 곳이다. 황토와 작은 돌들이 층층이 쌓여 키 높이를 넘기는 담장 안에 잘 지어진 한옥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창평 고씨 집성촌이던 이곳엔 아직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덕분에 마을 고택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 사이사이 낡은 한옥을 헐고 새로 지은 집들도 있다. 그러면서도 대문을 바꿨으나 담장만은 그대로 남겨두어 창평파출소 안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돌담길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한옥과 돌담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전래의 손맛도 남아있다. 바로 쌀엿이다. 돌담길 중간중간 쓰여있는 창평전통쌀엿이라는 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어느 곳에서나 엿을 살 수 있는 것. 엿값은 1kg당 1만원 선이다. 겨울동안 시간을 잘 맞추면 엿만드는 과정을 볼 수도 있을 것. 현재 삼천리에 쌀엿을 만드는 곳은 8곳으로 삼천리 이장인 고태석씨(061)382-8115)께 문의하면 된다.
동해를 따라 흘러내린 백두대간 그 산을 닮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삼척
삼척땅에 들어서면 모든 교통 표지판에 환선굴(幻仙窟)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삼척 시내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방면으로 달리다보면 아치형으로 세워진 커다란 환선굴 입간판이 막아선다. 이곳에서 우회전해 무릉천을 따라가다 보면 덕항산, 양태봉, 문무산, 지각산 등 태백산맥의 준령들이 병풍처럼 사방을 감싼다. 그렇게 이어진 도로는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이루는 덕항산(1,070m) 기슭의 대이리 군립공원 초입에서 끝이 난다.
대이리 군립공원. 말이 군립공원이지 국립공원 못지않은 규모다. 넓은 주차장 맞은편으로 정갈하게 복원해 놓은 너와집과 굴피집도 보인다.
너와집과 굴피집은 그 외관과 구조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소나무 판자를 이용해 지붕을 이었는지, 아니면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었는지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할 뿐이다. 소나무 판자를 이고 앉은 집을 너와집, 참나무 껍질을 이고 앉은 집을 굴피집이라 부른다. 이곳 대이리에는 10여년 전만해도 20여 채에 이르는 너와집과 굴피집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이리 동굴지대가 군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하나둘 씩 사라지거나 개량되었고, 지금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너와집 한 채와 굴피집 한 채씩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너와집 한 채와 굴피집 한 채. 왠지 구색을 맞춰놓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남아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이리 군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저 멀리 덕항산의 완만한 능선을 배경삼아 우뚝 솟은 촛대봉이 시선을 끈다.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그 모습이 자못 웅장하다. 지각산과 양태봉의 모습도 늠름하긴 매한가지다.
대이리 군립관광지를 찾는 이들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첫 번째는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이라는 환선굴을 보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백두대간의 장쾌함을 잇는 덕항산 산행을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그 속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엿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을 듯싶다. 산책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과 민박집 그리고 기념품 가게들. 얼핏 봐서는 여느 관광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풍경이지만 그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오랜 세월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이들의 순박한 삶이 자연스럽게 읽힌다. 6?25 동란 때도 군인 한 명 보지 못하고 총성 한 번 울린 적 없는 곳이 바로 이 곳 대이리 산촌마을이기 때문이다.
환선굴 구경을 했으면 덕항산과 두타산(1,353m)을 잇는 댓재(820m)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댓재는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대이리 군립공원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다시 삼척방면으로 거슬러 나온 뒤, 하거노 삼거리에서 424번 지방도로를 이용해 올라야 한다. 이 고갯길은 밑이 안 보일 정도로 험한 지형으로 소문난 곳. 그렇게 힘겹게 오른 댓재와 두타산을 이어주는 곳에 자리한 마을이 바로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 마을이다.
번천리 마을에는 큰 개울이 마을을 가로지른다. 예전에는 아시내(鴉柴川)로 불리던 것이 지금은 그냥 마을이름을 따서 번천(番川)이라 부른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 이 번천은 약수로 통한다. 물이 워낙에 깨끗해 일을 하다 갈증이 나면 그냥 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이 얕고 유속이 온화해 여름철이면 아는 사람만 찾는 숨은 피서지이기도 하다.
번천리에 유일하게 하나 남은 황태덕장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 번천리의 덕장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잘 말린 명태를 걷어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아침 햇살이 아직 번천리 마을에 채 닿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명태를 걷어내는 작업자의 손놀림은 분주하기만 하다. 기온이 올라가 땅이 녹으면 더 이상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장에서의 작업은 대부분 이른 아침에 시작해 정오가 되기 전 마무리 된다. 번천리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제법 많은 수의 덕장이 있어 찬바람이 제법 매서운 이즈음이면 많은 사진가들이 찾던 곳이기도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 씩 사라지더니 이제는 달랑 하나만 남아 있다.
댓재는 두타산 산행이 시작되는 들머리이기도 하다. 댓재에서 두타산 정상까지는 대략 5.7km, 3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된다.
푸른 바다의 즐거운 유혹, 한려수도의 중심 통영에서 즐기는 맛의 향연
통영에서 굴은 ‘꿀’이다. 발음도 그렇고 맛도 그렇다. 발음은 진짜 꿀(honey)과 구분이 되질 않는다.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완전식품, 굴. ‘어부 집 딸은 까매도 굴집 딸은 하얗다’는 통영의 옛말처럼 과학적 분석이 없었던 옛날에도 통영 사람들은 굴의 효용과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꿀떡꿀떡 잘도 넘어가는 통영 굴은 찬바람이 매서운 지금이 제철이다.
통영 굴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상에 오르는지 아는 게 우선이다. 먼저 바다로 나가보자. 굴 농장은 통영 앞바다에 말 그대로 널려있다. 항구에서 10분 정도만 배를 타고 나가도 주위로 굴 양식장이 줄줄이 연이어진다. 통영에서는 수하식으로 굴을 양식하는데, 수하식이란 물속에 길게 늘어뜨린 줄에 포자를 붙여 키우는 방식으로 수하식으로 양식되는 굴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어선 외에 ‘뗏목’이라 부르는 바지선이 필요하다. 어선에 연결된 뗏목에는 굴이 달려 있는 줄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굴 채취기가 실려 있고, 이 채취기를 이용해 굴을 끌어올리게 되는 것이다.
양식장에서 채취한 굴이 육지로 옮겨지면 다음은 굴 까기 작업이 기다린다. 대부분의 작업장에선 30~40여 명의 아주머니들이 굴 까기 작업에 동원된다. 하루 꼬박 10시간 이상을 서 있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하지만 굴 까기 작업은 통영주민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수입원이다. 굴 까기 작업장은 통영에만 300여 곳이 있고 여기서 일하는 여성은 줄잡아 1만 명. 세 집 걸러 한 집이 굴을 까서 돈을 번다고 하니 그 규모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굴 까기 작업장은 용남면 동암마을 일대에 많이 모여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굴 까지 작업에서 통영 굴 맛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는 점. 통영 굴 맛의 비밀은 굴이 오래도록 살아 있어 그만큼 신선하기 때문인데, 그 비결이 굴 까는 기술에 숨어있다. 통영에서는 굴 까기 작업에 갈고리 대신 작은 칼을 사용되는데, 이때 칼로 굴의 패주(굴과 껍데기를 연결하는 질긴 근육)만을 잘라내기 때문에 굴의 몸체에 상처를 내지 않고도 껍질에서 생굴을 분리해 낼 수 있고, 그만큼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업된 생굴은 굴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이하 굴수협)으로 옮겨져 경매에 붙여진다. 낮 12시 경남 통영시 동호항에 자리한 굴수협 공매장 입구는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차량들로 긴 줄이 만들어 진다. 굴수협 직원들의 발걸음도 어느 때 보다 바빠지는 시간이다. 12시 30분, 경매가 시작되면 경매장 한 켠을 가득 메운 30여 명의 중매인들의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진다. 외투 속으로 깊숙이 찔러 넣은 손이 순간순간 잽싸게 움직이고 경매인의 흥을 돋우는 목소리도 한층 높아진다. 치열했던 1차 경매는 그렇게 1시간 여 만에 끝이 난다. 제각각의 가격에 낙찰된 굴들은 새 주인의 차로 옮겨져 다시금 공판장을 빠져나간다. 통영 굴수협에서는 하루에 두 번(오후 12시와 6시) 굴 경매를 실시하는데, 이곳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굴의 양은 100여 톤에 이른다.
굴 천국 통영에서는 굴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도 만나볼 수 있다. 굴전, 굴밥, 굴칼국수는 물론 굴을 넣은 라면까지 있다. 하지만 통영 굴의 제 맛을 느끼고 싶다면 역시 생굴로 먹어보는 게 최고. 갓 건져낸 굴을 체에 담은 상태로 수돗물에 흘려 표면의 소금기만 제거한 뒤 아무런 양념 없이 한입 먹어보길 권한다. 그렇게 먹어봐야 입 안 가득 번지는 향긋한 굴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생굴만 먹기가 부담스럽다면 새콤달콤한 초장에 찍어 먹는 생굴 회도 괜찮다. 생굴을 찍어먹는 초장으로는 통영사람들 즐겨먹는 고운 고춧가루로 만든 초장이 좋을 듯. 텁텁한 고추장 보다는 칼칼한 고춧가루가 상큼한 굴 맛을 유지하는 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굴요리 전문점으로는 통영유람선터미널 옆 나폴리회식당(055)646-0055)과 무전동의 향토집(055)645-4808)이 유명하다.
통영에는 굴 외에도 먹을거리가 많다. 통영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로는 역시 충무김밥을 첫 손 꼽을 수 있다. 중앙시장 옆 도로변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충무김밥 집이 있다. 통영의 충무김밥 맛은 대체로 상향평준화 되었다는 게 중론. 그래서 어느 집을 선택하든 크게 실망할 일은 없다. 서호시장 안에 위치한 원조시락국(055)646-5973)도 한번쯤 찾아볼 만하다. 바닷장어로 푹 고아 우려낸 육수에 된장을 풀어낸 국물 맛이 일품인 이 집은 장장 5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통영의 전통 맛집이다. 이외에도 통영여객터미널 앞 남옥식당(055)643-2551)의 복국도 통영여행에선 놓칠 수 없는 맛집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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